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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같은 건, 처음 1화 만화

by 귀염은혜 2022. 2. 13.

1. 부부가 아닌 순간부터

 

프랑스 파리, 튀를리 정원에서 찻길을 건너면

한 번쯤 들어가 내부를 구경하고 싶은 충동을

일게 하는 궁전 호텔이 잇다.

 

17세기 귀족 파티가 한창일 것만 같은 이

호텔은 각국의 유명 인사들로 매일매일

문전설시를 이루었다.

 

우아함의 극치, 모든 것이 느리고 더디게 흐를 

것만 같은 호텔에 투숙 중이던 현준은 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가운을 ㅂ고 거울 앞에 서서 머리를 말렸다.

로션을 두드려 발랐고, 면도가 잘되었는지

꼼꼼하게 확인했다.

 

그린 듯진한 눈썹, 조화로운 각도로 벋은 콧날,

열기에 붉은 입술은 인상을 또렷하게 했다.

별다른 구색을 갖추어 입지 않아도 내뿜는 

분위기는 무척 매력적이었다.

1쪽

 

 

똑똑똑똑. 똑똑똑똑.

 

바지를 입고 셔츠를 고르던 때였다.

 

누군가 소란스럽게 객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현준응ㄴ 다가가 문고리를 돌려 열었다.

 

다짜고짜 밀고 들어오는 이는 다름 아닌

세계적인 모델, 알벨린이었다.

 

[준,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고게 사실이야?]

 

자신의 객실인 양 당당하게 들어서는 아벨린을 

따라 현준은 안으로 들어섰다.

 

[정말이야? 정말 한국으로 돌아가는 거야?

한국엔 가지 않는다고 했잖아.]

 

셔츠 고르던 일을 마저 했다. 넓은 어깨부터

절록한 허리까지 타고 내려오는 근육은 그가

움직일 때마다 형체를 드러냈다.

 

잠시 후, 미동 없는 음성으로 그녀의 질문에 

답했다.

 

[그렇게 됐어. 한국 합작 공연 감독을 

맡았거든.]

2쪽

 

 

 

 

[단신을 찾는 사람은 여기에도 많아. 꼭

한국에서 일할 필요는 없잖아?]

 

아벨린은 툴툴 주은 목소리를 하며 그의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 모습을 현준이 탐탁지 않은 듯 힐끔

쳐다보자 아벨린은 슬쩍 일어나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언제 다시 돌아오는데?]

 

[글쎄. 이번에 돌아가면 영영 안 올지도.

관광이면 모를까.]

 

[이, 일하러 간다며, 그럼 공연 끝나면

돌아오는 거 아니야? 또 뭘 하려고?]

 

셔츠에 팔을 꿰었다. 빳빳하게 다린 셔츠가

그의 상체 곡선을 따라 감겼다.

 

모델들 사이에서 좋은 몸이라면 질리고 질릴

만큼 보아왔지만 그의 몸은 유난히

이상적이라고, 아벨린은 문득 생각했다.

 

 

[전처? 당신의 예전 아내?]

 

현준은 마지막 점검 차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곤 열려 있던 커다란 트렁크를 꽉 닫고는

바닥으로 내렸다.

 

[그래. 내 예전 아내. 아내를 만나러 가는

거야.]

 

[이혼한 아내를 왜 찾아가려고 하는 거지? 난

도무지 이해가 안 돼.]

 

마지막으로 재킷을 입고, 머플러를 두른 현준은

트렁크를 끌었다.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했는데 돌아선느 그를

따라 아벨린은 일어섰다.

 

저 근사한 동양인 감독과 로맨스를 꿈꿨는데.

철벽도 그런 철벽이 없더니, 이젠 아예 이곳을 

떠나버리겠단다. 한마디 말도 없이.

 

어떻게 나, 이 아벨린에게 어떻게! 한마디 말도

없이!

 

아벨린은 문으로 향하는 현준을 향해

소리쳤다.

4쪽

 

 

 

[전처를 다시 붙잡아보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뭐야. 왜 가는 건데! 왜!]

 

현준은 잠시 멈췄다. 그러곤 뒤를 돌아 잘

있으라는, 마지막 손짓을 보냈다.

 

[네 말이 맞아.]

 

[......,]

 

[붙잡아보려고.]

 

한국의 가을이 시작된, 어느 날이었다.

 

*

 

"침착하게. 침착하게. 잘할 수 있어."

 

서원은 평소보다 긴장한 표정을 한 채 미팅

장소를 찾았다.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한불 합작 공연의 축제

총괄을 맡게 되었고, 바야흐로 오늘은 첫 미팅이

있는 날이었다.

 

기획안을 제출할 때만 해도 워낙 쟁쟁한

기획사들이 대거 응모했고, 생각에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우리 회사가 되겠나 싶었다.

5쪽

 

 

 

 

 

낙타가 바늘구멍을 뚫는 일이다 싶어 포기한 채

잊고 살았는데, 덜컥 뽑혀버렸다.

 

"그나저나 프랑스에서 오셨다는 감독님은 어떤

분일까. 되게 궁금하네."

 

몇 달 동안 함께 합을 맞출 감독님은 어떤 

분일까. 서원은 무척 궁금했다.

 

구불거리는 금발 머리를 대충 묶어도 멋진,

헐렁한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어도 빛이 나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예술인 느낌이 폴폴 나는

분일 것만 같아 어쩐지 설레기도 했다.

 

서툰 솜씨지만 프랑스에서 한국까지 와주신

분을 위해 불어로 인사도 연습했다.

 

회의실이 늘어선 복도를 걷다가 멈춰 섰다.

 

"여기인가 보다. 아직 아무도 안 왔겠지?"

 

안내받은 회의실 번호를 바라보고는 문 앞에 

서서 크게 심호흡을 했다.

 

윤서원. 잘하자. 잘하자. 잘하자. 할 수 있어!

잘할 수 있어. 윤서원!

6쪽

 

 

 

 

 

"휴. 하나, 둘, 셋."

 

결심 끝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다가 그만

움찔하며 제자리에 멈췄다.

 

가장 일찍 도착한 줄 알았는데 누군가 먼저 와

창밖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실례합니다! 아무도 안 계신 줄 알 ......,"

 

말꼬리를 흐리며 서원은 자신을 향해 돌아서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상대가 누구인지 인식하는 시간은 1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 ......아."

 

입 밖으로 짧은 탄식이 터졌다.

 

아. 아? 아! 아 ......,"

 

연이어 터지는 탄식 소리만 들어도 생각의 

전개가 느껴졌다.

 

"뭐야 ...... 말도 안 돼 ......,"

 

서원은 보고도 못 믿겠다는 듯 회의실 번호를

7쪽

 

 

 

 

다시 한번 확인하고, 다시 안을 들여다보았다.

 

회의실 번호가 틀렸을 리 없고, 눈앞에 서 있는

저 사람을 다른 사람과 헷살렸을 리 없다.

 

고개를 휘휘 돌리고 두 눈을 감았다가 부릅뜨며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뭐야 ...... 이게 뭐야 대체 ......,"

 

이곳, 지금, 전남편이 등장할 타이밍은 아니지

않나?

 

당황함에 머릿속이 팽팽 돌았다.

 

"윤서원, 오랜만이다."

 

"허 ......,"

 

못 본 지 5년이나 지났음에도 소름 끼치도록

익숙한 목소리.

 

쾅! 너무 놀란 나머지 문을 닫고 회의실 바깥에 

섰다. 백 미터 전력 질주를 한 것처럼 헉, 헉,

긴장한 숨이 밭게 터졌다.

 

아니야. 이건 꿈이야. 이건 꿈이라고!

8쪽

 

 

 

 

거친 숨을 몇 번이나 내쉬고 나서야 슬그머니 

다시 문을 열었다. 창가에 서 있던 전남편이 낯선

프랑스 감독님으로 바뀌어 있길 짧은 시간 미친

듯이 바랐다.

 

끼익. 끽. 끼이익. 끽.

 

아주 조금씩 문을 열며 얼굴만 슬금슬금

내밀었다. 모습은 민가의 정찰을 나온 겁 많은

토끼 같았다.

 

"아아 이젠 윤서원 피디님이라고 불러야 

맞잖아!

 

"맙소사. 말도 안 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뛰는 심장을 부여잡다가

꽉 닫은 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뭐가 뭔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인생의 서사가

지금 막 복잡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밀려들었다.

 

일 분 정도 흘려보냈을까. 서원은 다시 문을

9쪽

 

 

 

 

열었다.

 

"넌 사람 말하고 있는데 문이나 쾅쾅 닫고."

 

몇 번이고 문을 닫았다가 열며 삐걱거리는 

전ㅊ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현준의

눈빛이 영 마뜩잖다.

 

"기획안 작성자 이름이 윤서원인 걸 보고

설마설마했는데, 진짜 너였 ......,"

 

쿵. 서원이 다시 문을 닫았다. 이번엔 회의실

안으로 들어섰다.

 

"정말 너, 남현준 맞아."

 

"아 ......,"

 

보고 있음에도 믿을 수가 없었다. 안, 믿고

싶ㅇ도 믿기지 않았다.

 

이곳에 서서 쭉 자신을 기다린 것만 같은

전남편을 바라보며 서원은 긴 침묵을 이어갔다.

 

"어라, 두 분 일찍 오셨네요."

10쪽

 

 

 

 

때마침 문체부 담당자가 들어섰고, 현준이 이번

한불 합작 공연의 총감독이라는 사실을 알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직 인사 안 하셨죠? 이쪽은 남현준 감독님.

이쪽은 윤서원 피디님. 두 분 인사 나누세요."

 

감독님이라니. 감독님이라니!

 

하나의 충격을 해결하기도 전에 또 하나의 

충격이 엎친 데 덮쳐 온다.

 

서워는 담당자를 향해 작은 목소리로

질문했다.

 

"감독님이 프랑스 분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저는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아아. 아뇨, 프랑스에서 오시긴 했는데 국전은

한국이시죠. 제가 말씀을 안 드렸나 봐요. 중간에

통역이 끼면 아무래도 의사소통이 힘들었을

텐데. 잘됐죠?"

 

속도 모르고 담당자는 잘딘 알이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반갑습니다. 남현준입니다."

11쪽

 

 

 

 

 

 

여전히 비걱거리는 그녀를 두고, 현준은 쿨내가

진동하는 깔끔한 인사를 건넸다.

 

힘을 주지 않아도 핏줄이 도드라진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어쩔 도리가 없어, 무엇을 피하거나 되돌릴 

수가 없어, 서원은 영 자신 없는 손을 내밀며

그의 손을 잡았다.

 

"안녕하세요. 윤서원입니다."

 

악수한 손을 가볍게 흔들자 그녀의 손이

흐느적거린다.

 

정신 차리라는 듯 현준은 약간 힘을 주어

그녀와 악수를 하다가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갔다.

 

등응ㄹ 약간 구부리며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서원은 순간 굳은표정을 했다.

 

...... 이렇게 만나면 안 될 것 같은데.

 

"잘 부탁합니다. 여러모로."

 

" ......,"

 

"우리, 자주 봐야 할 것 같으니까."

12쪽

 

 

 

 

피할 수가 없없다.

현준과 서원은 스물여섯에 결혼을 했다.

 

이른 감이 있었지만 얼마 후 현준의 부친 또한

재혼이 예정이었으므로, 아들의 결혼식을 

앞당겼다.

 

결혼 당시엔 양가를 초함한 모두가 궁합에

관심이 없었으므로 따로 사주를 보지 않았다.

결혼 후에야, 실제 신혼 생활이 시작된 후에야

부부의 연을 맺으면 안 되는 상극의 사주임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었다.

 

알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주변에 이상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살면서 한 번도 겪기 힘든

불행과 볼운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처음엔 웃어넘겼고, 다음엔 조심하자 서로

말했다.

 

그다음엔 불안했고, 그다음엔 두려워졌다.

 

나중엔 종이에 손만 베어도 너무나 큰일처럼

여겨졌고, 자칫 목숨을 잃을 뻔했던 현준의 

교통사고를 끝으로 서원은 이혼을 결심했다.

13쪽

 

 

 

 

결혼 생활은 도합 2년을 채 넘기지 못했다.

서원은 이혼을 바랐고, 현준은 그녀의 청을

들어주었다.

 

...... 서원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렇게 남처럼 사는 것만이 너를 지키고 나를

지키는 일이라 여겼는데, 일터에서 만나버렸다.

 

우리가 이렇게 다시 만나도 되나? 되는 건가?

 

"감독님 일정이 바쁘다고 들었는데,

참여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회의 진행 중인 담당자는 현준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기획안이 몹시 좋더군요.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현준의 덤덤한 음성에 서원은 짧은 숨을

내쉬었다. 방금 전까지 요동치던 마음이 빠르게

가라앉는 듯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이

중요한 순간에?

 

혼란한 마음과는 별개로 이곳은 일터였고,

14쪽

 

 

 

 

오랫동안 공을 들인 기획의 첫걸음, 몇 날 며칠

밤을 설레며 기다려온 첫 미팅이었다.

 

서원은 눈꺼풀에 힘을 주며 밀어 올렸다.

 

맞아. 상극이면 어떻고 잔남편이면 어떤가.

일만 현 되지.

 

그래. 일만 하면 된다. 마음 섞자는 것도

아닌데, 일터에서 만난 상극이 무슨 대수라고?

 

"잠깐 쉬었다가 갈까요? 기획안 러프하게

살펴보고 끝낼게요."

 

기획안을 짧게 훑기 전에 잠깐 쉬자는 담당자의

말에 서원은 고개를 들었다. 회의 시작 전

심기일전을 해보려는 마음에 화장실에

다녀오기로 했다.

 

"그럼 저는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예예. 다녀오십시오, 피디님."

 

다녀온 뒤엔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리라!

 

서원이 가방에서 파우치를 꺼내 나가려고 몸을

음직이던, 바로 그때였다.

15쪽

 

 

 

 

"으아아아!"

 

의자가 삽시간에 한쪽으로 기울더니 옆으로

쓰러지는 게 아닌가?

 

콰다당! 서원은 그대로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어이고, 피디님! 괜찮으세요?"

 

바닥에 넘어진 서원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저 먼 과거에도 쓰지 않았을 것 같은 몸 개그를

한 탓이 아니었다. 쪽팔려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허, 의자 다리가 부러졌네. 괜찮으세요?"

 

회의 시작 전, 의자를 빼준 사람은 다름 아닌

현준이었다.

 

"의자 다리가 많이 삭았네요. 이거 말고는 전부

다 새 의자였는데 이떻게 이걸 꺼내 앉으셨네요."

 

부실했던 의자 다리가 결국 부러진 것을

담당자가 알려주자 서원은 으흑, 비감한 신음을

터트렸다.

16쪽

 

 

 

 

이 넓은 회의실에. 이 많고 많은 의자 중에.

 

현준잉 골라 꺼내준 의자에 앉았더니 멀쩡한

의자 다리가 부러진다.

 

이 와중에 지가 꺼내주었다고 말하는 전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의자, 제가 고른 의자입니다."

 

"아, 맞다. 감독님이 꺼내주셨죠. 회의실 비품

교체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어떻게 옛날 의자가

섞여가지고."

 

바닥에 누워 일어날 생각 없이 으흑, 으흑,

소리를 내는 그녀 앞으로 현준이 다가왔다.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아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이 느껴졌다.

 

서원은 앞으로의 미래를 보지 않으려는 것처럼,

더욱더 눈을 질끈 감았다.

 

나한ㅌ테 오지 마 ......

 

너랑 만나면 매일매일이 사건 사고야 ......,

 

"윤 피디님. 괜찮습니까?"

17쪽

 

 

 

 

상극잉 아니긴 뭐가 아니야 ......,

 

"일어날 수 있겠어요?"

 

상극이 아니긴 뭐가 아니야! 맞잖아, 상극!

 

아흑.

18쪽

 

 

 

 

나의생각: "얼추 기획안도 살펴봤고, 오늘은 간단하게

인사하는 선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내일부터

공식 일정 시작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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